2012년 1월 19일에 창호 고문을 인터뷰하기위해 분당 자택을 광대(光大) 홍보국장과 창순(彰淳) 사무국장이 방문하였다. 창호 고문은 집의공파(執義公派) 33세손으로, 1935년에 평북 영변에서 태어났는데, 평북 영변은 일찍부터 집의공파 종친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곳으로 해주와는 옛날의 교통사정상 거리가 멀어 연락없이 몇 백년을 지내오다 대종회에서 경오대동보 발간을 추진할때에 집의공파의 명단을 제출하여 대동보에 등재하면서부터 대종회와 관련을 갖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1989년에 대종회 운영위원이 된 뒤 1993년에 부회장이 되고, 1999년에 고문이 되어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해주최씨대종회는 창호 고문에게 있어서 연구ㆍ교육ㆍ사회 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명문거족 후예로서의 자부심을 만끽하게 해주는 태산같은 배경이었다 한다.
1990년에 발간한 경오대동보에 남북분단으로 재북 종친들이 모두 함께하지 못하여 매우 안타깝고 애절하다며 오늘날 산업문명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도의가 떨어지고 사회질서가 흩어지고 있고, 외래문명의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젊은이들 가운데 우리 민족전래의 가치체계를 무시하고 혈통에 무관심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있으나,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큰 인물에 대하여 그 사람 어느집 자손이냐고 조상과 혈통에 관심을 보인다며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말이 있듯이 매사에 그 근원은 그 존재의 생존력의 원천이 되는것이라고 강조한다.
창호 고문은 끝으로 우리 해주최씨는 오랜 전통을 통하여 우월한 역량과 확고한 충의를 지켜온명문거족의 후예들로 이러한 깊은 역사를 재음미하며 자기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에 덕성으로 봉사하여, 민족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유능한 청소년들이 대종회에 결집하여 친선을 도모하고 협동함으로써 국가ㆍ사회의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소수 엘리트 중추세력이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했다.
현재 서울대 교수로 제14회 젊은 과학자상(대통령상)을 수상한 석봉(錫棒) 대종회 운영위원이 창호(昌浩) 고문의 자제(子弟)이다.